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좀 뚱뚱한 편이었다. 그런데 날씬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옷 몇 벌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으셨나 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키도 크고 날씬했던 우리 엄마는 멋진 양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으셨는데 이 하이힐은 한 번도 못 신으셨단다. 어느 일요일 온 가족이 외출을 하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안 나간다고 하시더란다. 알고 보니 하이힐 신은 엄마가 아버지보다 키가 더 커진 탓이었다. 한 번도 못 신어 본 이 하이힐을 오랫동안 간직해 오셨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쇼트컷을 해 전세계에 유행이 되었을 때 엄마도 쇼트컷을 하셨다. 짧은 머리를 하고 깃 세운 낙타코트에 하이힐을 신고 살짝 포즈를 잡았을 엄마를 상상해본다. 그 하이힐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지만 낙타코트는 가끔 거풍할 때 보였다. 아마도 마지막 정리를 하시는 중 이 멋진 코트를 세탁해 오신 모양이었다.
20년 전이니 나도 그때는 지금보다 날렵할 때라 입어 보니 너무 멋져서‘내가 입을께’하고 가져 왔는데 결국은 한 번도 입지 않았다. 몇 번의 이사 중에도 트렁크에 잘 넣어 간직했던 코트를 꺼냈다. 여전히 당장 입고 나가도 손색이 없는 코트. 올해 63세인 내가 태어나기 전 입으셨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 코트를 경운박물관에 보내야겠다. 나보다 더 귀하게 간직해 줄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