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61회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함께 한 낡은 법복

훈장
훈장

작년에 부모님이 이사하면서 짐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시던 아버지(김영수 金永銖)의 법복을 발견하였다. 낡고 군데군데 좀까지 먹은 법복을 부모님과 상의하여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깨끗이 하고자 세탁소에 가져가니 너무 오래된 것이라 훼손될까봐 못해준다고 거절하였다. 나는 2003년부터 박물관에서 박물관 강좌를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박물관 수장고에서 동문들이 기증해 온 유물을 정리하고 소독하고, 출토복식의 재현작업에 참여하여 바느질도 하고 있다. 그래서 박물관에서 유물을 세척할 때 배운 대로 집에서 조심스레 손빨래를 하여 말끔해진 법복을 기쁜 마음으로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법복과 함께 몇 차례에 걸쳐 80여 점의 유물을 기증하였는데 이번 봄 기증전에 아버지의 법복이 채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아있던 아버지의 훈장 2개를 함께 전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먼지투성이인 훈장은 녹이 많이 슨 상태였으나 토마토 케찹으로 닦고 가는 솔이 달린 치간 칫솔로 구석구석을 솔질하니 한결 깨끗해졌다. 훈장은 검사 시절에 받았다고 하시며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아마 성실한 공직 생활의 결과물인 듯하다. 

1922년생인 아버지는 전라북도 고창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할아버지(김완석)로 인해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 한다. 그러나 아주 영민하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상으로 받은 공책으로 공부했다고 회상하시곤 한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일찍 돌아가신 형님 댁의 조카들까지 부양하는 형편이었다. 국학대학(현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셨으나 취업을 위해 혼자서 사법고시 공부를 해서 수석으로 합격하셨다. 1951년 서울지방 검찰청 검사로 임명되었고 그 후 법무부 검찰국 정보과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를 지내셨다. 5.16 혁명 후 퇴임하시고 변호사 개업을 하셨다.


1953년 아버지는 당시 홍진기 법무부장관 사모님의 중신으로 따님의 피아노 레슨을 다니던 어머니(송원숙 宋元淑)를 만나게 되었다. 외할아버지가 신의주 우체국장으로 유복한 환경이었기에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고 한다. 신의주에서 일본 여학교를 졸업하고 피난을 내려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홍 장관 댁으로 레슨을 다닐 때였다. 당시 아버지는 32세, 어머니는 24세였는데 만난 지 몇 달 만에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에 두 분은 명동에 있던 세종호텔 바로 옆에 살았다. 어머니는 인근에 꽤 유명한 선생님으로 알려져 국제복장학원 최경자 원장 댁 세 자매와 태극당 집 딸 등이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드나들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세종호텔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불이 나서 우리 집까지 피해를 입었고 소방관이 우리 집에서 호텔의 불을 끄던 것이 생각난다. 항상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자란 나도 자연스레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오정주 교수님의 사사를 받았다.


검사 초임 시절 아버지는 미국 연수를 가셨는데 어머니께서 피아노 레슨을 하며 생활을 꾸려나가 주셨기에 마음 놓고 다녀 올 수 있었다고  고마웠다는 말씀을 요사이 부쩍 하신다. 나이가 드시니 젊은 시절에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시는가 보다. 공무원 봉급으로 조카까지 보살펴야 했던 아버지께 어머니의 부업은 큰 힘이 되었을 것 같다. 평생을 묵묵히 가정을 위해 헌신하신 두 분께 이번 기회를 빌어(빌려)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내며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기원한다.


기증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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