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54회

할머님의 갓저고리

2010년 겨울 경운박물관의 박물관강좌 화요아카데미를 수강하고 박물관의 운영위원으로 일하면서 아주 옛날 물건이 아니라도 기증이 가능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생들과 의논하여 어머니가 결혼할 때 입으셨던 흰색의 난초문양 조세트 치마, 새색시 시절 입으셨던 치마 저고리, 딸들을 위해 준비했던 여러 옷감 등을 기증하였습니다. 근대직물전이나 여러 전시에 제가 기증한 유물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후학들에게 역사의 한자락을 보여주고 가르쳐준다는 마음에 기쁘고 흐뭇합니다.


이번에  전시되는 갓저고리는 할머님 것이었는지 증조할머님 것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어머님(2011년 작고)께 진작 여쭈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비둘기 색의 이색단으로 매화, 난초, 대나무, 소나무 문양이 들어 있고 남보라 자미사 안감으로 선단을 쳐서 더욱 멋스럽고 우아한 느낌을 줍니다. 안에는 토끼털을 대어 추운 겨울 철에 요긴하게 입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6.25동란으로 부산에 피난가 있을 시절 아버지는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와튼스쿨에 유학 중이셨는데 인편으로 몇가지 물건과 옷감을 먼 길에 상하지 않도록 단단한 알루미늄 상자에 넣어 보내주셨습니다. 그 당시 물건이 귀한 시절이라 옷감은 다 쓰고 이 상자에 실, 가위, 옷핀 등 바느질에 필요한 용품을 담아 항상 어머님 옆에 두고 쓰시던 물건입니다. 나중에는 할머님으로부터 받은 아버님의 돌잡이 때 상에 놓았던 무명실을 한지에 싸서 보관하시고 더하여 우리 일곱 자매(56회 이효영, 59회 이주영, 62회 이은영)의 돌잡이 실을 보관해 놓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상자와 함께 안에 들어있던 여러 가지 소품도 그대로 기증하여 이번 전시에 나온다니 돌아가신 어머니도 많이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저희 집안은  신흠, 장유, 이식과 더불어 조선중기 4대 시성으로 추앙되시는 연안 이씨 월사(월사)  이정구의 12대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늘 부모님으로부터 월사의 자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선비정신을 지키라는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청마루에 걸려 있던 증조할머니의 글씨가 기억납니다. “마음은 항상 정직히 가지며 뜻은 높이 지니어라 일은 정성껏 하고 근검 저축하여라 자손은 상당한 교육을 시키고 집안은 화평하게 다스려라” 매일 아침 보는 글이어서 저절로 감화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서 입으셨던 갓저고리에서도 고고한 선비정신과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는 난초문양과 군자의 품격과 절개를 나타내는 대나무 문양, 영원한 봄을 상징하는 소나무 문양을 보면서 다시 한번 할머님의 가르치심을 되새겨 봅니다. 현명하신 조상님, 자애로우신 부모님, 그리고 우애로운 동생들과의 삶이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조상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증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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