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50회

크리스티나 양장점을 아시나요?

1966년 그해는 나의 일생 중 가장 변화가 많았던 해라는 걸 반세기가 넘어 새삼 되돌아본다. 2월 대학 졸업식이 끝나자 바로 약혼, 결혼하고 4개월 시댁에서 살면서 대가족들과 낯을 익힌 후 8월에 신랑과 함께 뉴욕으로 떠났으니 실로 놀라운 발전을 한 셈이다. 신촌 학교 앞 다방도 별로 가본 적 없이 학교와 집을 오가던 시절이었다. 인심 좋은 교수님이 “휴강이다~” 하시면 친구들과 기분낸다며 고작 워커힐(1963년 호텔로 개관) 뒷산으로 가서 졸업 후 우리의 미래를 설계해 보고 이야기꽃을 피우다 곧장 집으로 오는 답답한 범생이었던 나였기에 그해의 8개월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벅찬 시기였다.


결혼과 미국행을 앞두고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약혼, 결혼 드레스 등 모든 옷들을 명동에 있는 크리스티나 양장점에서 맞추었다. 그 시대 유행하던 실크, 노방, 불망(불란서 망사, 요즈음의 레이스 옷감) 등으로 앙상블, 쓰리피스를 여러 벌 마련했다.

크리스티나 양장점은 나의 외숙모님이시자 경기여고 24회 대선배님이신 백희득 여사가 운영하시던 양장점이다. 나의 사촌인 김선규(50회), 김순규(51회)의 어머님이시기도 하다.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 작가의 큰 누님이시기도 한 외숙모님은 사십 중반에 파리로 가셔서패션을 공부하고 오신 디자이너였다. 기성복이 없던 시대이니 대학 입학식부터 입고 다녔던 청록색 봄 코트며 블라우스까지 다 맞춤이었다. 그러니 약혼, 결혼 드레스도 자연스럽게 함께 의논하며 디자인했다. 지금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그랬다. 미국 가면 이런 정장을 입을 일이 많을 줄 알았고 옷이라도 안 빠지게 입어야 코리아의 자존심을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첫아들 쫓아다니느라 정신없었던 뉴욕생활 3년,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한새 옷들을 이삿짐에 넣으면서 너무 아쉬웠던 기억만이 남는다.

요즈음의 세련되고 화려한 드레스에 익숙해진 눈으로 그때의 약혼 드레스를 보니 왜 이렇게 심플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양에선 할머니나 어머니가 입었던 드레스를 딸, 손녀 대에 까지 물려 입는다는 멋진 스토리를 듣곤 한다. 우리나라같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눈부시게 발전하는 요즈음에도 5, 60년 전 할머니 드레스를 입겠다는 손녀딸이 있을까? 기증전에 전시된 내 약혼 드레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참신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만들어 입는 젊은이가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이 글을 쓰면서 옛날 앨범을 천천히 넘겨본다. 사진 속의 엄마 아버지 그리고 시부모님, 오래전에 가신 분들이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기증 소장품

요즈음의 세련되고 화려한 드레스에 익숙해진 눈으로 그때의 약혼 드레스를 보니 왜 이렇게 심플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양에선 할머니나 어머니가 입었던 드레스를 딸, 손녀 대에 까지 물려 입는다는 멋진 스토리를 듣곤 한다. 우리나라같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눈부시게 발전하는 요즈음에도 5, 60년 전 할머니 드레스를 입겠다는 손녀딸이 있을까? 기증전에 전시된 내 약혼 드레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참신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만들어 입는 젊은이가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이 글을 쓰면서 옛날 앨범을 천천히 넘겨본다. 사진 속의 엄마 아버지 그리고 시부모님, 오래전에 가신 분들이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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