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칠을 한 분홍색 함은 시할머니의 친정어머니 (안씨, 1860년생)의 봉치함입니다. 친정아버님은 구한국 시대에 궁에서 자재 및 보급품 담당 고급 관리로서 종로구 서린동의 만석꾼이었다고 합니다. 이분은 개화에 일찍 눈을 떠 아들을 미국 브라운대학에 유학시킬 정도였습니다. 장손은 나중에 독일 유학을 했고 건국 초기 외무부 국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이 브라운대학 출신의 할아버지(백상규)의 부인이 바로 경기여고 6회 동창회장인 한기주 대선배님이십니다. 백상규 할아버지는 6.25 전에 파주 출신 국회의원이셨는데 훗날 납북되고 말았습니다. 시할머니가 일찍 청상과부(25세)가 됐을 때 친정어머니(안씨)가 딸 (백숙)을 위하여 이 함에 여러 가지 패물 등을 넣어서 딸에게 주었는데, 당시 함께 건네 준 가죽 가방 속에는 땅문서가 많아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함이 우리 집에 와서는 잦은 이사로 비바람도 맞고 하여 표면이 많이 상했지만 가장 오래되고 의미 있는 것입니다.
검은 색 함은 시할머니의 것인데 다른 것에 비하여 좀 낡았습니다. 다른 함 두 개는 시어머님과 시이모님의 것으로 6.25 전쟁 중에 우리 집에 보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