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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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생각해..황실 옷에 사치 못 부리게 했죠

언론매체 :경운박물관 | 게시일게시일 : 17-10-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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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기념 황실 복식 전시 찾은 이해경 여사

고종 손녀이자 의친왕 다섯째 딸.. 도서관 사서 은퇴 후 뉴욕서 거주

'마지막 황실의 추억' 회고록도 내

 

 

 

"저는 고종 황제와 순종 황제가 돌아가신 뒤에 태어나, 그분들이 12장복 입은 모습을 보지는 못했어요. 다만 1년에 한 번씩 순정효황후가 계신 창덕궁에서 옷을 꺼내 말리고 바람을 쐬어줄 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경기여고 내 경운박물관 특별전시실. 옥빛 두루마기를 입은 이해경(88) 여사가 검은색 12장복을 바라봤다. ··용 등 12개 문양을 새긴 제례복으로, 고종 황제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복으로 제정한 옷이다.

     

이 여사는 고종 황제의 손녀이자 순종의 이복동생 의친왕(본명 이강·1877~ 1955)의 다섯째 딸이다. 의친왕비가 호적에 유일하게 올려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녀'로 불린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동아시아도서관 사서로 27년간 일하다 은퇴 후 뉴욕에서 지내온 그는 경운박물관 초청으로 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고종·순종·순정효황후·의친왕 등이 입었던 복식과 유품을 전시하는 '대한제국, 복식에 깃든 위엄'전이 내년 2월까지 열린다.

 

"한국에 간다고 하니 미국 지인들이 북핵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려요. 건강이 좋지 않아 저도 망설였지만, 남은 생에 조국을 방문할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용기를 냈습니다."

 

이 여사는 의친왕 사저인 서울 종로구 사동궁에 살다, 1955년 의친왕이 폐렴으로 서거하자 미국으로 혼자 떠났다. 손에 쥔 돈은 피아노 팔아 비행기표 사고 남은 돈 80달러뿐이었다. 식당 종업원, 유아원 보모 등으로 일하던 그는 1969년 도서관 사서로 취직했다. 대한제국 주미 공사관 건물을 되찾는 운동과 의친왕 명예 회복 운동 등에 힘썼다.

 

경기여고 동창회인 경운회가 세운 박물관에서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 학교 36회 졸업생인 이 여사도 녹원삼과 당의를 기증했다. "6·25전쟁이 터져 부산 피란 갈 때 의친왕비께서 '시집갈 때 꼭 입으라'며 주신 옷이에요." 누렇게 변한 소매와 치마 끝 금박 장식을 가리키며 "백성을 생각해 옷에 사치 부리지 않도록 순금을 쓰지 못하게 했다"고 전했다.

 

18일엔 같은 장소에서 '대한제국, 왕실 세미나' 강연자로 나섰다. 지난 7월 출간한 회고록 '마지막 황실의 추억'(유아이북스)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냈다. "왕가에선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옷만 입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음식도 간소했어요. 전쟁 통엔 비단을 시장에 내다 팔아 쌀 한 말 사서 궁궐 식구들과 나눠 먹었어요."

 

이 여사는 "덕혜옹주처럼 사라진 황실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고 회고록을 썼다"고 했다. "마흔 살 되어 사서로 일하고 나서야 대한제국의 역사, 우리 집안 이야기도 제대로 모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찾고 공부를 했습니다."

 

최근 덕수궁과 정동 일대를 대한제국 관광로로 정하고, 대한제국을 주제로 국제 학술 심포지엄이 열리는 등 대한제국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 여사도 지난 1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재현 행사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후손들에게 치열한 애국의 역사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김승현기자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