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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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특별전 위해 귀국한 의친왕 다섯째 딸 이해경씨

언론매체 :경운박물관 | 게시일게시일 : 09-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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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특별전 위해 귀국한 의친왕 다섯째 딸 이해경씨

이해경씨는 “요즘 한복에는 치마끈이 사라졌지만 옛날 법도에서는 중요히 여겼다”고 말했다. 의친왕비는 늘 하얀 치마끈의 길이를 맞춰 한가운데에 가지런히 놓았단다. [안성식 기자]


“사극을 보면 답답해 죽겠어요. 아기 낳기 전까지만 입던 다홍치마를 대왕대비가 입으시니…. 잠자리 날아가는 양 예뻤던 애기내인(어린 궁녀)들의 네 가닥 댕기도 나오지 않고요.”

의친왕의 다섯째 딸 이해경(79)씨가 3일 ‘왕실의 추억’을 들려줬다. 이날 서울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막한 ‘오색창연’전 관련 특강과 뒤이어 마련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다. 세 살 때부터 사동궁에서 의친왕비와 살았던 이씨는 왕가의 마지막 생활상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고종의 손녀이자 마지막 왕녀다.

의친왕비가 1945년까지 착용한 당의(唐衣). 가슴과 양쪽 어깨에 금사로 수놓은 오조룡보가 붙어 있다. [경운박물관 제공]

◆“의친왕비 옷이 제일 화려해”=“왕실엔 과부가 많았어요. 과부는 무늬 없는 남치마에 옥색 저고리를 입고 흑각비녀를 꽂았지요. 지금 생각하면 슬픈 풍경인데, 그땐 아름답게만 보았죠. 어머니(의친왕비 연안 김씨)의 옷이 제일 화려했어요.”

어린 눈에 방탕하게만 보였던 아버지 의친왕에 대해 불평하면 어머니는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니) 금박 옷을 입고 금비녀에 금첩지도 하는데 아름답지 않니?”라 되물었단다.

“몰락하던 왕가였지만 창덕궁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치렀어요. 정초에 문안 들어가는 게 제일 컸고, 황제 탄일(誕日)과 윤대비마마 탄일도 큰 행사였죠. 그때만큼은 저도 당저고리 입고 화관을 썼지요.”

머리와 허리가 일직선이 되도록 해 반쯤 숙이는 평절을 했다. “발바닥이 맞닿게 천천히 내려앉으며 절했죠. 나이가 들어 힘들어지면 두 다리를 옆으로 나란히 놓아 앉았고요. 한쪽 무릎을 세우는 건 기생 절이에요. 꿇어앉는 건 일본식이고요.”

문안을 드리고 수강재로 내려가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한 사람이 한 상씩 받았다.

“궁에서는 절대 겸상을 안 하지만 딱 하루 예외가 있었어요. 순조대왕께서 민간인과 똑같이 하루를 지내고 싶어 지으신 비원 안의 99칸짜리 연경당에 나가는 날이요. 대비마마와 저희 어머니, 운현궁에 계시던 흥친왕 계비 할머니, 고종 후궁 광화당이 한방에서 함께 식사하셨죠.”

비원의 밤나무 숲에서 밤을 줍는 ‘습률회’란 행사도 있었다. 동짓날엔 모든 사람이 남치마에 팥죽색 저고리를 입어 장관을 이뤘단다.

◆“하루에 백 년을 뛰었다”=이씨는 궁 안팎을 동시에 살았다. 궁 밖에 나가보지도 못한 어머니가 “너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자라야 한다”며 서양식 교육을 시켰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고무줄도 하며 뛰어 놀다 학교 선배이던 친척에게 “너무 평민같이 놀지 말라”는 편지를 받기도 했단다. 겨울이면 어머니가 교복 안에 입으라고 챙겨주시는 솜치마를 행랑에 몰래 벗어놓고 덜덜 떨며 학교에 갔다.

“궁의 법도와 바깥의 그것이 달라 하루에 백 년을 뛰었죠. 어렸을 땐 내가 왜 이 집에서 태어났나 혼자 한숨 쉬며 울었어요.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동이 됐지요. 그게 너무 싫어 미국으로 도망 가 내 인생을 살았는데, 지금 여기 와서 이야기하고 있네요.”

이씨는 의친왕비 당의, 의친왕 흑룡포 등의 유물을 모교인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 기증했다. 15일까지 열리는 ‘오색창연’전에는 그걸 포함해 경운박물관·보나장신구박물관·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초전섬유퀼트박물관·한국자수박물관·한상수자수박물관 등 6개 사립박물관이 소장한 왕실 복식 관련 유물 100여 점이 출품됐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씨는 이번 전시 때문에 잠시 귀국했다. 6일 오전 10시 고궁박물관에서 왕실복식 특강도 한다.

“제 나이 이제 팔순인데 지금 아니면 언제 말할 수 있겠어요. 마지막 특강이라 생각합니다.”

이경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joongang.co.kr>